감정표현불능증, 감정에 이름을 붙이기 어려운 사람들

Getty 알렉시티미아는 그리스에서 유래한 단어로, "감정을 표현할 단어가 없음"을 뜻한다

아침에 일어나 기분이 이상하다 느껴도, 그 감정을 딱 잘라 설명하기 어려웠던 적이 있나요? 누군가는 분명 "오늘은 좀 불안하네", "기대돼서 설레"라고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그저 "그냥 이상한 느낌" 정도로만 다가올 수 있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거나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증상을 **감정표현불능증(Alexithymia)**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감정을 표현할 단어가 없음'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되었죠. 전체 인구의 약 10%가 경험하는 비교적 흔한 상태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주제입니다.

 

 

감정표현불능증이란?

감정표현불능증은 단순히 내성적인 성격이나 말수가 적은 것과는 다릅니다. 감정 자체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인지하고 분류하고 표현하는 과정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 특징이죠.

• "기쁘다"와 "안도한다"의 차이를 구분하기 어렵거나
• 어떤 감정을 느끼고는 있지만 그게 화인지, 슬픔인지 모호하게 느껴지거나
•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감정보다는 신체적인 반응(턱을 무의식적으로 깨문다거나, 자주 물건을 떨어뜨림)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스로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보니,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감정 중심의 대화나 관계가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이유가 될 수도 있죠.

 

 

누가 감정표현불능증을 경험할까?

감정표현불능증은 성격, 신경 발달, 정신 건강 상태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특히 자폐 스펙트럼에 있는 사람들은 일반 인구보다 감정표현불능증을 겪을 확률이 최대 5배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또한, 다음과 같은 사람들에게서도 흔히 나타날 수 있습니다.

•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는 사람
• 우울증이나 불안을 가진 사람
• 어린 시절 정서적 지지를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
• 감정 표현이 금기시되던 환경에서 자란 사람

이처럼 선천적일 수도 있고, 후천적 경험으로 인해 생겨날 수도 있는 다층적인 특성을 가졌습니다.

 

 

감정표현불능증의 일상적인 예시들

BBC 인터뷰에 등장한 크리시아 월독 박사는 자폐 진단을 받았으며, 감정표현불능증을 겪는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어려움을 설명했죠.

• 스트레스를 느낄 때 '턱에 압박감'이라는 신체 반응으로만 인식
• 감정이 있다는 건 알지만, 그 감정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림
• 배고픔을 느끼지 못해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해야 함

또한 동료인 레베카 엘리스 박사 역시 감정 간 미세한 차이를 이해하기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기대감과 불안감이 구분되지 않아서 즐거운 일을 앞두고도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곤 한다고요.

 

 

감정표현불능증이 삶에 미치는 영향

감정을 제대로 인지하고 표현하는 능력은 정신 건강, 인간관계, 의사소통 등 삶의 거의 모든 영역과 맞닿아 있습니다.

• 감정을 억누르다 보면 만성 스트레스에 취약해지고, 이는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타인의 감정을 잘 읽지 못해 오해를 사거나,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 자기 감정을 말로 풀지 못하면, 화나 짜증 등 격렬한 방식으로 표출되기 쉬워집니다.

그렇기에 감정표현불능증은 단지 '감정을 잘 모르는 성격'이 아닌, 심리적 안녕과 관련된 중요한 주제입니다.

 

 

극복 방법은 있을까?

다행히도 감정표현불능증은 개선 가능성이 있는 특성입니다. 많은 연구자들과 심리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방법들을 제안합니다.

1. 감정일기 쓰기
   • 하루를 돌아보며 느낀 감정을 단어로 적어보세요.
   • "오늘 기분은...", "나는 지금...하다" 등의 문장으로 연습해보면 좋습니다.
2. 감정 단어 목록 활용하기
   • ‘화’, ‘짜증’, ‘당황’, ‘무력감’, ‘뿌듯함’ 등 구체적인 감정 단어 목록을 참고해 감정 명칭에 익숙해지는 것도 방법입니다.
3. 감정 앱 활용하기
   • ‘How We Feel’, ‘Mood Meter’ 같은 감정 추적 앱은 다양한 감정 언어를 배울 수 있는 도구로 활용됩니다.
4. 인지 행동 치료(CBT)
   • 심리상담이나 치료를 통해 감정 인식 및 표현 훈련을 받을 수 있습니다.
5. 주변인의 도움 요청하기
   • 가까운 사람에게 자신의 감정 변화를 알아차리면 부드럽게 알려달라고 부탁해 보세요. 비난이 아닌 지원의 태도가 큰 도움이 됩니다.

 

 

왜 이 용어를 아는 것이 중요할까?

감정표현불능증이 특별한 치료 대상이 아닌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용어를 알고 있으면 스스로를 이해하고, 타인을 존중하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 내 감정을 쉽게 말할 수 없다고 해서 내가 이상하거나, 감정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 나와 다른 방식으로 감정을 다루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 자기비판보다는 자기이해를, 억압보다는 수용을 선택할 수 있게 됩니다.

 

 

마무리하며

모두가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교류하는 시대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은 ‘내가 지금 느끼는 게 뭘까?’라는 질문 앞에서 막막함을 느낍니다.

감정표현불능증이라는 이름은, 그 막막함에 대한 이해의 첫걸음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만약 그 막막함을 느낀 적 있다면, 이제는 그 감정을 설명할 단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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